내 마음의 코스모스 1

 

 

지금도 눈 감으면 보이는 그리운 내 고향,

나지막한 할미산 자락 서편에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뚝방길(한들방죽)

동편에는 수백 개의 바둑판을 깔아 놓은 듯 소금밭(염전)이 앉아 있었다.

거기서부터 멀리 계양산까지 옹기종기 작은 마을과 시냇물,

그 사이에 논과 밭은 그림처럼 평화로웠다.

밀물 때는 출렁이는 서해 바닷물이 집 가까이 들어오고 썰물 때는

멀리 지평선까지 시원하게 갯벌이 펼쳐진 바닷가 가까이에 내 고향집이 있다.

바로 집 앞 들판에는 가을마다 코스모스 꽃이 만발했다.

 

내가 태어나 세상을 바라보며 처음 본 예쁜 꽃,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밭에서 나는 꿈꾸듯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 집 앞에 코스모스가 왜 그렇게 많이 피었는지,

그 꽃밭의 주인은 누군지 알 수도 없었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냥 꽃밭이 거기 있기에 그 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

꽃술을 중심으로 8장의 갸름한 꽃잎이 달린 빨강, 분홍, 하얀색 얼굴의 예쁜 꽃과

나뭇가지 모양의 잎사귀는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숫자이자 색깔이자 모형이었다.

 

코스모스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꽃말은 순정, 애정, 조화라고 한다.

모든 꽃의 시조로 신이 제일 먼저 만든 꽃, 그래서 cosmos(우주)라고 했던가.

우리나라에는 19세기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고 일명 살살이 꽃이라고도 불렀는데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연약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세월에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일 듯 꺾이지 않는 코스모스,

어릴 적부터 나는 이런 코스모스와 함께 어울리면서

나의 감성을 키워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가을마다 코스모스 꽃밭에서 놀았다.

소꿉친구들과 함께 장난치면서 꽃 속에서 꿀을 빨고 있는 벌을 잡기도 하고

코스모스 꽃을 손가락 사이에 끼어서 친구들 등 쪽에 ‘탁’ 하고 꽃무늬를 놓아 주기도 했다.

신발 속에 벌을 낚아채어 빙글빙글 돌리다가 ‘탁’ 하고 땅에 내리치면 불쌍한 벌은

땅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어쩌다 실수하여 벌에 쏘여 혼난 적도 많았다.

벌을 잡아 구워 먹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짓궂은 장난을 쳤는지,

아마 장난기 많은 오빠들한테 배운 버릇이었을 것이다.

 

언니들이나 친구들과는 좀 더 얌전히 놀았다.

때로는 하얀 토끼풀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그 사이사이에 코스모스 꽃을 꽂아 머리에 얹기도 하고

기다란 엄나무 가지 뾰족한 가시마다 색색의 코스모스 꽃을 꽂아 집안을 장식하기도 했다,

부모님께서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집안에 있는 모든 창문이나 방문에 창호지 교체 작업을 하셨다.

온 식구가 참여하는 이 행사에 어머니께서는 가을꽃 코스모스로 예쁘게 창문을 장식하였다.

추운 겨울에도 그 꽃무늬가 놓인 창문을 바라보며

한겨울의 추위를 잊고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기도 했다.

 

여섯 살 때인가.

큰언니가 시집가던 날, 코스모스 꽃밭에 자동차 한 대가 와서 결혼식이 끝난 언니와 형부를

태워가려 할 때 나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고 나도 데려가 달라고 울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언니의 신혼 단칸방에서 꽤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가

학교에 입학할 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하늘나라에 계신 언니에게 그때의 철없던 행동을 용서해 달라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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