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을 찾아서

             계양산 지켜주네 우리학교, 소나무 향나무도 우리와 함께...

    초등학교 때 불렀던 교가의 첫 소절이다. 여기서 계양산은 내 고향 동쪽 끝, 매일 아침해가 찬란히 떠올랐던 산의 이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항상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계양산 정상을 오늘 처음으로 올랐다. 어렸을 때는 그 산이 너무 높아서 못 올랐고, 그 이후에는 등산로가 없어서 못 올랐다. 등산로가 생기고 주변에 인구가 늘면서 개발된 이후에는 고향을 떠나 살았기에 또 못 올랐다. 이제 반세기가 지난 후 처음으로 계양산 정상을 정복한 것이다.

     사실 얼마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계양산행을 준비했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고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각인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 고향집 마당에서 바라보았던 계양산의 거대한 능선, 그 능선에서 철따라 위치를 조금씩 옮겨가며 눈부시게 떠올랐던 아침 해는 항상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고향에 얽힌 옛 추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오빠 언니 동생과 그리고 덤으로 남편을 부추겨서 산행에 동행케 했다.

     인천시의 변두리, 아름다운 농촌 풍경으로 가득했던 내 고향은 지난 십수년 동안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전철과 고속도로가 넓고 푸르렀던 벌판을 가로질러 달리고, 한 여름 하교길에 친구들과 발 담그며 놀던 시천동 시냇가는 지금 경인운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땅거미가 질 무렵 하교길 길목에서 매번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상여집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은빛 찬란한 검암전철역사가 우뚝 서있다. 이 가운데 오직 변하지 않은 것, 그것은 동쪽하늘 말없이 서서 고향을 지켜준 계양산 하나 뿐인 것 같다. 이제 그 산을 오르며 유년시절의 추억여행을 떠나려 한다.

     아침 일찍 남양주를 출발하여 청량리,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행 전철을 타니 어느 틈에 계양역에 다다른다. 바로 눈앞에 낯익은 계양산 모습이 보인다. 반대쪽 내 고향에서 보았던 능선과는 좀 다르지만 김포평야 서쪽에 우뚝 솟은 그 모습은 여전하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가고 밭에는 무 배추 등 각종 채소가 수학을 기다리고 있다. 전철이 지나는 곳인데 아직 인적이 드물고 시골냄새가 물씬 풍긴다. 알밤을 토해낸 밤송이들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은 한적하기 만하다. 오래간만에 가을 들녘을 걸으며 일행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계수나무와 회양목이 자생하여 계양산이라 불렀다는 높이 395m의 계양산. 1986년부터 도시자연공원(계양공원)으로 지정하여 등산로를 만들고 경사가 심한 곳은 계단을 설치하여 주변사람들(인천 부평 부천 김포 등)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식목일만 되면 계양산 기슭으로 회양목을 캐러 다녔던 일이 생각난다. 그 회양목은 화단을 가꾸거나 교문 양쪽 길에 나란히 심어 등하교길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완만한 능선을 30여분 오르니 넓은 갈대밭이 나오는데 그사이로 정말 회양목이 즐비하다. 작은 키의 회양목, 우리는 그때 그것을 도장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마 목도장을 만드는데 사용했던 것 같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위치를 알아보니 저 아래가 시천동이라고 한다. 그럼 이 길은 아버지께서 황해장터를 다니셨던 그 고개길이 아닐까. 아버지는 황해장이 서는 날이면 집에서 키우던 소를 몰고 시천동을 거쳐 황해장으로 가셨다. 어린 마음에 황해장이 어딘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시천동을 지나 계양산 산길을 넘어 가셨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에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현재 계양구 장기동에 전국에서 유명한 황해장이 열렸다고 한다. 아버지께서 이 길을 밟고 장터로 가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 오솔길에 널려있는 돌 하나 풀 한포기에서도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장터에서 가끔 사 오셨던 소머리고기로 끓인 구수한 국 냄새가 코끝에 아련히 스쳐온다.

     다시 완만한 산길을 오르니 가파른 등산로가 우리를 기다린다. 돌도 많고 등산객들도 많이 보인다. 발길에 채는 돌은 예사 돌이 아니다. 빗살무늬 기와장과 성벽을 쌓았던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있다. 지금부터 1,500여년 전 계양산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란다. 지금은 성벽이 허물어지고 축성형태만 남아있지만 총길이가 1,180m, 높이가 7m나 되는 제법 큰 산성이다. 2001년 계양산성에 대한 문화유적지표조사가 이루어져 기와 토기 석기 철기 등 중요한 문화재가 발견되었으며(기념물 제10호) 현재 산성발굴조사와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던 계양산이 이렇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산인 줄 오늘에야 알았다. 좀 더 일찍 찾아와 이곳에 깃들어있는 조상의 숨결을 느껴보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덧 정상에 도착하니 등산객들로 붐비고 커피 간식 등을 파는 장사꾼들도 있다.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인 정상에서 우선 나는 내 고향 서쪽 바닷가를 찾아보았다. 아련히 보이는 곳, 연무 속에서도 인천 앞바다 국제공항청사 영종대교가 보인다. 거기서 약간 북쪽으로 가면 분명 내 고향인데 연무 때문에 확실치는 않다. 준비해간 망원경으로 확인하려니까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송신탑에 가려서 통 찾을 수가 없다. 인근 검암동의 전철역사는 똑똑히 보이는데 그 쯤 어딘가 고향집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동쪽으로는 김포평야의 황금벌판과 김포공항 계류장에 일렬로 늘어선 비행기들도 뚜렷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고양시와 일산시가 아득히 보이고 남쪽으로는 인천시가지 송도신시가지 그리고 얼마 전 개통한 송도대교가 정말 길게 뻗어있다. 계양산은 옛날부터 강화 마니산과 함께 인천의 2대 명산이었다고 한다. 마니산이 형산이고 계양산은 아우산으로 불리면서 의좋게 서울의 관문역할을 해왔다. 공촌동으로 이어지는 징매이고개는 공촌 지역의 소금을 서울로 옮겨가는 통로였다고 한다. 고종 20년 이곳에 축조된 중심성(重心城)은 해안경비를 담당했으며 이후 수도 서울의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곳곳에 세워진 안내문을 모두 읽으며 탐사에 열중하는 나에게 일행은 늦었다며 하산을 종용한다.

     하산길은 가파른 등산로에 설치한 계단을 수없이 밟으며 계산역 쪽으로 내려갔다. 계산동 백마장 부평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도심의 물결을 내려다보니 지난 수십년간 변해온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계산역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니 가끔 먹는 추어탕이지만 오늘은 그 맛이 일품이다. 아마 몇시간 동안 옛 추억 찾기에 굶주렸던 때문이 아닐까. 귀로는 검암역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공항전철을 타기로 했다. 산기슭에 초라한 상여집이 있던 자리에 우람하게 서있는 검암역사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천근교의 작은 마을 내 고향 향토사에 묻혀버린 그 상여집,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을 싣고 하늘나라로 데려다주었던 울긋불긋한 상여, 이제 그 상여는 최첨단 열차로 변해 단 20여분 만에 우리를 김포공향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남양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또 계양산에 묻어둔 유년시절을 반추하며 내년 꽃피는 봄에 다시 한 번 찾아오리라 다짐했다.

                                                                                                                                       2009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