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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오빠와 새언니
나에게는 위로 오빠 세분이 있다. 오빠가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에게는 참 부러운 일이다. 오빠라는 말은 항상 우리에게 정감이 가고 의지가 되는 뜻이 담긴 단어이기 때문이리라. 이 세분 오빠들 덕택에 나는 지금까지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그중 둘째오빠(용오빠)와 새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용오빠는 나보다 6살 위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용오빠는 일손이 부족한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나와 내동생)을 많이 돌보아 왔다. 집안 농사일이나 동생들 돌보는 데는 용오빠가 더 많이 거들었다고 한다.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이 보시기에도 우리집 대들보인 큰오빠와 막내인 셋째오빠 보다는 둘째인 용오빠가 만만한 상대였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어릴 때부터 오빠들과 어울려 놀면서 보살핌을 받아왔다. 지금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나는 오빠들(특히 둘째와 셋째)을 따라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낚시질과 게잡이 즐겼고, 봄가을에는 산으로 들로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놀기도 하고 잔심부름도 했다. 어쩌다 틈이 나면 알이 통통하게 든 칡뿌리를 캐거나 알밤을 줍고 집 주위에 주렁주렁 달린 감도 따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울이면 오빠들이 만들어준 썰매를 타면서 오빠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놀던 기억도 새롭다. 오빠들이 서서 타는 외발썰매는 감히 흉내도 못내고 앉은뱅이 썰매를 타고 씽씽 얼음판 위를 달리며 놀던 때가 그립다. 여자로서 집안 살림을 돕기보다는 선머슴처럼 바깥활동을 더 즐겼던 성격은 오빠들 밑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철부지 어린 시절이 끝날 무렵 용오빠는 군대를 갔다. 얼마 후 훈련을 마치고 휴가를 나온 오빠는 멋진 카투사 계급장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멋있어 보였는지... 그때만 해도 고생만 죽도록 하고 온다던 일반병사들과는 달리 용오빠는 휴가차 나올 때마다 뽀얗게 살이 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고, 때로는 미군들이 먹는 씨레이션과 고기, 아니면 큼지막한 오렌지 한봉지 들고 왔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오렌지 맛은 지금의 수입오렌지와 같은 맛이겠지만 당시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어느날 나는 용기를 내어 귀대하는 용오빠에게 재미있는 소설책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 교과서 이외에는 별로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고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했던 내가 기댈 곳은 용오빠 밖에 없었다. 용오빠는 어김없이 다음 휴가 때 나에게 줄 소설책 한권을 들고 왔다. 그때 그 소설 테스는 내가 처음으로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런 용오빠가 무사히 군대생활을 마친 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직장에 입사하게 되었다. 가난한 농부집안에서 태어나 어렵사리 고등교육은 마쳤지만 대학까지 졸업하기에는 용오빠의 어깨가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어느 날 부모님의 주선으로 용오빠는 눈이 큰 예쁜 신부를 만나 결혼을 했다. 청량리 밖 조그만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용오빠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휴일에는 페츄리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신혼을 즐겼던 용오빠와 새언니의 행복한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새언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큰 눈에 반해버렸다. 부모님을 닮아 쌍꺼풀이 없었던 내가 항상 부러워했던 그런 눈이었다. 당시에는 쌍꺼풀진 커다란 눈을 가진 얼굴이 인기였기 때문에 나처럼 작은 눈을 가진 사람은 한번쯤은 성형수술도 생각해 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큰 눈을 가진 언니는 마음씨도 그 눈만큼이나 서글서글하고 너그러웠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나는 새언니와 시누이 올케지간의 따듯한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그 곱던 왕눈이 새언니도, 향수를 즐겨 사용했던 새신랑 용오빠도 이제 70대 노인이 되었다. 용오빠 앞에서는 항상 철부지 동생 같았던 나도 내년이면 70대로 접어든다. 그동안 용오빠와 새언니는 남매를 낳아 오직 자식 키우는 일과 생업에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부모 마음에는 자식들이 항상 부족해 보이고 안쓰럽고 더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용오빠와 새언니도 마찬가지로 다 큰 자식들에게조차 더 나누어주고 아낌없이 베풀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의 행복과 건강은 자식들 보다 항상 순위에서 뒤떨어지는, 어찌 보면 바보처럼 살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진정한 가족사랑이고 이웃사랑이 아니겠는가.
언니는 지난 초여름에 허리를 다친 후 서너 달 동안 힘들게 투병생활을 했는데 다행히 요즈음은 회복되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뿐이다. 오빠도 얼마 전에 생전처음 대장검사를 했는데 용종만 몇 개 제거했고 큰 문제는 없다고 해서 정말 다행이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는 식습관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했지만 역시 오빠는 베풀기만 하는 용감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오빠 언니의 여생이 건강과 행복만으로 가득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내후년에 있을 금혼식에는 그야말로 축복받는 기념식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7년 전 종양제거 수술 후 죽음과도 같은 시간을 무사히 견딜 수 있도록 돌봐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빠 언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8년 12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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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6 개
심현녀(56)
2019-01-01
요즈음 들어 옛날이 그립고 자꾸 생각나는 것은
나만의 감성인지
아니면 점점 늙어감을 실감해서인지 모르겠군요.
내용이나 글솜씨가 부족해도 용기를 내어 올렸어요.
그냥 지나가는 글로 쭈~욱 한번 훒어 보시길....ㅎㅎ
정영희(56)
2019-01-01
새해 첫날 너의 옛이야기를 읽으니 가슴 따듯해진다
형제가 여럿이라도 통하는 동기간이 있더라구
유독 셋째 오빠께서 잘 살펴주셨구나
네 복이지만 너도 잘 섬겼겠지
그래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오빠의 은덕임에 틀림 없다 ㅎ
남자가 결혼 후 형제들과 돈독하려면 올케의 이해와 배려가 꼭 필요한데
언니의 심성도 오빠처럼 비단결이었지 싶다 유유상종 말이야 ^^
가족관계를 비롯해 모든 관계 안에서
친절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
앞이 짧은 우리가 꼭 실천해야하는 것 !!
재미있게 한 호흡에 읽었다
역시 사는 이야기라 생생한 기운이 전해져 좋으네
앞으로도 종종 올려줘
네 뇌가 좋아할 거야 ~!^^
건강 챙기고 ~~♡
홍정일(49)
2019-01-01
올려 주신 글을 읽다보니 저의 어린 시절이 떠 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6.25때 외갓댁으로 피난을 가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시골에서 지냈답니다.
그래서 시골의 풍경들이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추억으로
떠 오른 답니다. 시냇가의 수양버들, 친구따라 나물도 캐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놀았던 시절.
어느 해인가 한 번 가보니 변해버려 그시절의 정겨운 모습들은
찾아 볼 수 없도록 변해 버려 아쉬움을 안고 왔답니다.
후배님도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오라버니가 세분씩이나 계셨군요.
부럽습니다.사랑을 듬뿍 받으셨겠어요.
저는 오라버니 없는 맏딸이라 오빠가 부러웠답니다.
시누 올케사이 우애가 돈독하다하니 참 보기가 좋으네요.
정겨운 글 덕분에 잠시 옛 생각에 젖었다 갑니다.
자주 뵈오니 반갑습니다.
클로버쉼터방에 식구가 느니 좋아요.
늘 건강과 행복 함께하시길 _()_^^
후배님 덕분에 문학방이 생기니 참 잘 됐어요.
많은 동문님들의 글이 올라 왔으면 좋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김봉희(56)
2019-01-01
반갑다 새해 첫날부터 너의 글을 읽으니 너무 좋구려
추억의 글은 항상 재미있고 아련해
오래전에 널 만났을 때 책을 번역한 책이라면서 받았을 때 그때 정말 대단했던 친구야 하고 느꼈지
이렇게 글 솜씨가 좋구려
아니 우리의 쉼터에 그냥 추억의 글이면 다 좋은것 아닐까
56기 인재들 많아요 ~~~~ 이 기대표 부자입니다 ㅎㅎㅎ
로그인 했는데 글을 쓰고 보니 로그인하라네 ~~~~ 시간이 오버?
정영숙(50)
2019-01-03
나이를 먹으면서 형제 자매들이 더 귀하게 여겨 지네ㅇ
오빠가 없어 항상 오빠있는 친지들이 부럽곤 했네요
근데 현녀씨는 오빠가 세분이나
에고~~~~~~~~부러워라
따듯한 가족 사랑 이야기에 마음까지 훈훈해 지내요
심현녀(56)
2019-01-05
누구나 어릴 때 추억은 잊을 수가 없지요
요즈음들어 그 추억마져 잊혀져 가고 있는것 같아서
이렇게 글로나마 남겨두면 좀 위로가 된답니다.
정선배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는 많은데 전 언니가 없답니다.
큰언니는 10여년 전에 돌아가시고
작은 언니는 아주 오래전에 가시고.
오빠들이 살아계실때
더 자주 만나야겠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또 봬요.
내 친구 영희, 봉희야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글로써 공감하니
우리도 자매가 된 기분...ㅎ
봉희는 시 한편씩 꼭 올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