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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1)
100여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가 서서히 끝나갈 무렵 전남 강진으로 1박2일 여행을 했다.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일정을 계획하고 여행사를 선정하여 가까운 친구 4명과 함께 여정에 올랐다.
강진은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다산학1)체계를 정립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 22대 왕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은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 사건2)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라는 극적인 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그러나 “당쟁에 시달려 학문에 매진하지 못했는데 귀양지에 와서 충분한 시간을 얻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본격적인 학문연구에 생을 바치겠다”는 역설적인 논리의 산물로 다산은 500여권의 대저를 완성한다. 또한 다산은 한국 실학의 원조인 유형원,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실학을 발전시켰으며, 역사, 철학, 과학, 공학, 저술가, 시인 등 여러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조선이 낳은 천재”로 재조명되고 있는 인물이다.
도대체 그 분은 어떤 사람인가?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다산의 학문과 사상의 이면에 숨겨진 그의 인품과 정신세계를 강진여행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어두워져만 가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 탈피하여 200여 년 전 시간여행을 하며 다산과 함께 배우고 느끼고 공감하며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은 모든 여행지기들의 바람이 아닐까,
아침 일찍 우리 일행들은 버스에 몸을 싣고 멀리 남해바다를 꿈꾸며 4시간여 만에 강진에 도착했다. 장흥 편백나무 숲에서 쉼을 갖고, 강진만 생태공원과 갈대군락지를 산책한 후 백련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리는 본격적이 다산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지난 여름 폭염으로 지친 몸이 이제 서서히 생기를 찾는 것 같았다.
만덕산 백련사는 다산의 벗이자 스승이자 제자였던 혜장선사3)와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유명한 백련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151호)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가는 트레킹코스는 차밭, 진달래와 억새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으로 그 옛날 다산과 혜장이 수없이 걸으며 우정을 나누었던 길이다. 보통 빠르기의 걸음으로 약40분 정도 걸리는 산길을 우리는 초가을의 신선한 기운을 받으며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울퉁불퉁 솟아오른 굵은 나무뿌리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조심하며 다산과 혜장의 자취를 더듬었다. 울창한 나무숲을 지나 얼마동안 걸으니 천일각(天日脚)이 보인다. “하늘 끝 한 모퉁이”에 서서보니 마치 한 폭의 수채화인 듯 저멀리 강진만이 보인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니 이제는 내리막길이다. 나무뿌리는 물을 먹어 미끄럽고 돌부리는 날카로웠다. 다리가 떨린다. 이래서 트레킹코스라 했나보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새들이 지저귀고 졸졸졸 개울물 소리가 나더니 오래된 동백나무와 야생 차나무 사이로 환하게 하늘이 보이고 고즈넉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바로 다산초당이었다. 다산이 십여 년 간 거주하며 연구와 집필에 몰두했던 곳, 그곳은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우주처럼 넓고 태양처럼 환한 빛이 서려 있었다. 쓸쓸하고 비루한 유배지가 아니라 아름답고 꿈이 있고 이상적인 고즈넉한 공간이었다. 다산의 四景詩帖에서 노래했던 앞마당의 너럭바위(다조:차 끓이는 부엌), 뒤뜰의 藥泉, 암벽에 새긴 丁石, 연못 안에 돌로 쌓은 石假山이 그림처럼 그곳에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조로 쓰던 앞마당 너럭바위에 앉아서 그의 체온을 느끼며 사진도 찍고 주변을 둘러보며 20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초당 뒤편 암벽에 새긴 丁石은 굵고 힘찬 그 획 속에 변치않는 그의 숨결이 감도는 듯 했다. 이 초당에는 동암과 서암이 있었는데 동암은 寶丁山房으로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000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면서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서암은 茶星閣으로 윤종기 외 18명 제자들이 살면서 다산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저술활동에 참여했다. 다산초당 및 이곳의 현판들은 모두 추사 김정희의 친필을 모각한 것으로 다산, 특히 그의 아들과 추사와의 교우가 깊었음을 알 수 있었다.
1) 다산학이라는 명칭은 8.15해방 이후 다산연구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그의 학문이 매우 독창적이고 방대하며 정치한 체계를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 사이에 일반화되면서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2) 1801년(순조1년) 신유년에 일어난 천주교박해사건으로 이승훈 이가환 정약종(정약용의 형) 주문모 신부 등 100여명이 죽고 정약용 외 400여 명이 유배를 떠남. 황사영은 신유박해를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황사영백서)를 명주천에 써서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려다 적발돼 사형을 당했다.
3) 해남대둔사 출신의 뛰어난 학승으로 유학에도 식견이 높았으며 다산의 심오한 학문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하고 다산도 혜장을 선비로 대접하여 두 사람은 서로 학문을 토론하고 시도 짓고 차를 즐기며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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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4 개
정영희(56)
2018-12-27
오랜만에 걸출한 논문(?) 한 편 올렸구나
한국의 다빈치, 다산의 이름 석자는 알고 있는 터에
이렇게 상세히 정리하여 올려주니 반갑고 고맙다
지난 여름 함께한 강진 여행은 다산을 만날 수 있어 의미가 더 컸지
강진의 맛난 음식과 풍광만 만났더라면
배고픈 소크라테스이길 자처하는 우리는ㅋ 허전했으리라
되짚어가는 여행의 멋은 분명 너의 선물이다
학교 때 다산학 써머리? 리포트 같다만 사이사이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 노래 소리, 탄성이 물기를 주어 건조하지 않구나
네 수고로움을 알기에 한 번 읽고 흘려버릴 수가 없어 두 번 읽었다
그를 존경하지 않고는 노안에 ㅎㅎ 쓸 수가 없지
그의 업적에 놀랐고 인품을 흠모할 수 밖에 없었지
경세가로서도 훌륭하지만 지아비로 아버지로서의 인품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산에게서 받은 목민심서 인증샷도 올려봐
네가 제일 잘 나왔었잖아~^^
읽을 거리가 없어 아쉬웠던 홈의 격이 업된 기분이다
머리의 녹을 닦은 느낌이야
건강 챙기고 잘 있어 ~
수고했어 ~♡^^*
김봉희(56)
2019-01-01
덕분에 공부해요
역시 글쟁이들은 글을 잘 써 ~~~~
정귀임(56)
2019-01-31
홈에 들어 와 보니
너에 글에 추억에 사진을 첨부해 보고 싶네
심현녀(56)
2019-02-08
잊고 있었던 다산초당
다산이 쓰시던 그 다조에 앉아서
찍은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초당의 모습과 석가산 연못도 그립다.
다시 볼 날을 기대하며..
귀임아 따듯한 봄날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