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늙으면 할 일이 있어야 혀......

배에 시동을 걸자, 배가 힘찬 소리를 내더니 선착장을 한 바퀴 빙그르르 돈 다음에 저수지 한가운데로 천천히 나아간다.

학봉호 선장을 맡은 뒤로 매일매일이 새로운 권영감은 손님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기를 기다려 마이크를 잡고 목청을 가다듬는다.

“에, 에, 학봉호 선장 권영달 올씨다. 잠시 안내 말쌈을 드리것시유. 여그 수심이 이십칠메타나 되니께 절대루 일어서면 안돼유. 이 학봉호로 말할 것 같으믄 인근 3개 부락에서 공동으루다가 운행하는 뱁니다. 자리가 많은데 왜 열한 명만 태우냐구유? 이래뵈두 사람만 열두 명이지, 나락을 스무섬두 실어 날르구 경운기가 턱하니 올라탔다 내리는 배여유. 그게 저어기, 법이 그래유. 정원이 선장인 저까지 열두 명인디 거그서 정원을 한 명만 늘려두 선원 한 명에 보조원 한 명, 여자 안내양 한 명, 이렇게 넷이 더 있어야 한다는 거유. 오늘 겨우 두 탕짼디 밥 빌어다 죽을 쒀먹어두 밑지는 장사래니께유.

군에서 새루 시작한 사업이라구 한번 협조를 해 보래서 하구는 있지만 벨 희망은 없는 사업 같에유. 또 몰르쥬. 우리 삼동네 둘레길이 신문에두 나구 텔레비에도 나왔으니께 사람들이 몰려와서 서루 배를 타겠다구 허는 날이 올런지두...

저어기, 여기 자랑을 좀 해볼라구유. 봄이면 진달래가 말도 못하게 곱구유, 여름이면 둘레길 우에 그늘이 어찌나 시원헌지 작년 여름에 양산장수가 재미 좀 볼려구 왔다가는 울고 갔다니께유. 갖가지 들꽃이 수줍은 듯이 고개를 내미는 숲 속 전망대는 어뗏시유? 출렁다리는 건너봤쥬? 그네두 타 봤시유? 옛날에 나무꾼이 다니던 길이니께 옛 사람 모양 흥얼흥얼 노랫가락이라도 한 자락 뽑아 불면 산새가 놀라서 푸드닥 날구, 가을이면 아기자기하게 단풍이 들어서 아무리 쳐다봐두 진력이 나지 않구유. 겨울, 그게 겨울이 환장하게 좋다니께유.

작년 겨울에 좀 추웠시유? 얼음이 육메타 두께로 얼었는디 그 위루 걷는 맛이 참 남다르더라구유. 얼음장 우에 눈이 덮히믄 설원을 걷는 맛이 그 뭐시냐, 업 그레이드 된다고나 할까유?

그때는 참말로 집이 양반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옆집 아자씨 손을 붙들고 와야 해유.

재미지기가 아주 오금이 저릴거구만유.

아이구, 아줌니. 일어서지 말어유. 배가 저그 옛길 선착장에 비끄러매진 담에 일어서유.

물에 빠지더라두 저 가생이서 빠져야지 여그서 빠지면 내가 책임이라니께유.”

새카만 촌로의 구수한 입담에 허리를 잡고 웃느라 일어서지도 못하는 젊은 새댁이 겨우 일어나 제 남편인 듯이 보이는 사내의 손을 잡고 맨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리자 권영감은 쌩하니 배를 돌려 학봉선착장으로 향한다. 배가 일으킨 물결을 타고 물별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꿈에서 보았던 비단벌레의 군무 못지않게 화려하다. 오늘은 손님이 좀 들 것 같다.

고여있는 물 같은 늘그막 길에, 늙은이들끼리 모여 앉아 담배나 죽이며 뻔한 얼굴을 들여다 봤자 그날이 그날 같아서 도통 재미라고는 없더니 이 작은 유람선의 선장이라도 맡은 다음에는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늘 새로운 얼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한마디 할 때마다 웃어주는 손님들을 만나는 날엔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그거이 요즘 내가 사는 맛인디......

권채운 作, ‘절로 휘파람’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