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하나 뿐인 구두를 만드는 사람

( 우주 속에 오직 한 켤레밖에 없는 신발 )

구두를 만드는 사람, 남궁정부 씨를 만난 곳은 네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2006년 4월에, 대한민국 수많은 절단 장애인 가운데 일곱 명이 히말라야로 갔다.

서울 이태원에서 전복 요리집을 하는 채성태, 그와 함께 이동식 주방트럭 사랑의 밥차를 타고 다니며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가수, 모델들과 함께.... 이 절단 장애인들은 해발 4,700미터 솟아있는 「칸진리」라는 산에 오르려고 나선 길이었다. 남궁정부는 그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히말라야라고 하면 사람들은 해발 8,000미터가 넘는 고산을 떠올린다. 그래서 4,700미터라고 하면 가볍게 생각하며 웃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칸진리산은 백두산보다 근 2,000미터가 더 높은 산이다.

함께 간 사람들은 허벅지 아래 두 다리가 없는, 한쪽 발이 없는 그런 사람들 이었으니 도대체 실성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높은 산을 오르겠다고 나설 까닭이 없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목발 짚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걸어 다니는 사람치고 손가락질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형이 그러하다는 이유만으로 홀대와 냉대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뒤늦게 장애자가 된 ‘절단 장애인’ 들이라면 더욱 더....

그게 그들이 히말라야로 간 이유였다. 자신도 남처럼 산에 올라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남들이 볼 때, 실성한 것 같은 짓을 감행한 것이었다. 4박5일 동안 그들의 산행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울 만치 감동적 이었다.

사지 멀쩡한 내가 고산증과 몸이 찢어질듯한 피로에 허덕일 때에도 내 앞뒤 양옆에서 그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걷고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정상에 올랐을 때, 펑펑 울 수 있었다. 그들 중에 남궁정부라는 칠십 노인이 있었다. 한국나이로 고희를 맞은 노인이 칸진리봉에서 울어버린 것이다.

남궁정부는 구두장이다. 수제화가 인기를 끌던 70,80년대에 웃돈을 받아가며 여기저기 스카우트되던 구두 장인이다. 90년대 들어 수제화의 시대가 가버렸고, 구두장이는 생계를 염려할 정도로 곤궁해졌다. 1995년 그날도 옛 동료들과 한잔하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 그날따라 플랫홈 가득 들어찬 인파에 떠밀려, 하루에 지쳤던 구두장이는 선로로 떨어졌고 열차가 덮쳤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고 요행히 죽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며 몸을 찬찬히 살피니, 오른손이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조금씩 올려 보는데, 팔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서 어깨에 붙어 있더라고 했다. 평생 구두장이로 살았던 사내가 인생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입원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살아야 겠다’ 는 말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 외치고서 그는 일어났다. 만류하는 가족들을 뿌리치고 면도기를 사서 왼손으로 수염을 깎았다. 그리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병원을 쏘다녔다. 좌절하지 않겠다는 생의 의지를 불태웠다.

“후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다시 수술해서 나머지 팔을 더 잘라내자” 는 의사 말에 곧이곧대로

몇 센티미터 남은 팔까지 잘라내고 퇴원했다. 열흘 만이었다. 삶의 계획은 전혀 없었다.

의수를 만들러간 의료보조기상 사장이 선언했다. “남은 팔이 너무 짧아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기능성 의수는 어렵겠습니다.,,,.” 기가 막혔다. 수술을 왜 또 했나 했지만, 그 다음 말이 그를 사로잡았다. “성한 팔이 있으면 그 팔만 쓰려고 하니까 더 어려워요.” 옳거니, 나는 왼팔이 있지 않은가.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팔만 없는 거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구두장이였다는 말이 나왔고, 보조기상 사장이 툭 던졌다.

“장애인 신발 한번 만들어보지요?” 인생 2장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1장이 끝난 게 55세였고, 2장은 금방 시작됐다. 중간 휴식도 없는 숨 가쁜 무대였다. 마음을 잡고 처음 시작한 것이 젓가락질과 글씨 연습이었다.

밥상은 온통 흘린 반찬과 밥풀로 난장판이 됐지만, 구두장이는 왼손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앗다. 쉰여섯 먹은 사내가 밥상을 발로 차며 펑펑 울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커다랗게 네모 칸이 그려진 글씨 연습장을 사서 ‘ㄱ,ㄴ,ㄷ’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익숙해지면서 가죽 자르기도 다시 시작했다. 처남집 차고에 ‘세창정형제화연구소’ 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손님을 기다렸지만 홍보도 없었고, 알려지지 않아서 손님은 없었다. 하나뿐인 직원이 날카로운 재단용 칼을 들고 가죽을 자르다가 허벅지를 쑤셔 가게를 피바다로 만든 적도 있었다.

“참을 忍자 세 번이면 왜 살인도 면 할 수 있는지 알았어요. 그만큼 그 고통을 참는 게 어려웠지.”

이제는 쌈도 싸먹고 , 가죽 재단용 칼도 무소불위로 휘두르게 된 외팔이 선생이 웃는다.

팔 없는 구두장이 에게 단골가죽상도 외상은 주지 않았다. 돈이 꾸역꾸역 들어갔다.

아내는 식당일을 하며 그 돈을 메웠다. 그러다 가게를 연지 6개월이 지난 11월, 한쪽 다리가 8센티미터 짧은 사십 대 손님이 뒷굽을 높여 수선해준 구두를 신고 찾아왔다.

“길이는 좋은데, 발이 자꾸 앞으로 미끄러져요.”

팔 없는 장인이 만든 구두를 신어줘서 고맙고, 자꾸 미끄러지는 구두를 신어준 게 또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 후 그의 몸에 꼭 맞는 구두를 맞추느라 세월이 갔지만, 남궁정부는 “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날 때부터 소아마비였던 소녀, 그래서 결혼식 때 꼭 제대로 걸어서 웨딩마치를 하는 게 소원이었던 여자에게 구두를 맞추어 주었다. 발이 기형적으로 커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신어본적이 없는 사내에게 신발을 만들어 줘서, 구두닦이에게 “구두 닦아 달라”고 당당하게 발을 내밀게 해준 일도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가게가 문을 닫을 정도로 곤궁해 졌을 때,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십시일반으로 모은 3천만 원 자리 통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당신 없으면 우리가 걷지를 못하니 당신은 꼭 돈을 벌어라” 하며 막무가내로 통장을 내밀더라고 했다.

그 모든 신발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 오직 한 켤레밖에 없는 신발 들이었다. 손바닥에 한 켤레가 오롯이 들어가는 작은 신발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신발 형태로 보이지 않는 자루 같은 신발도 있었다. 왼팔로 만든 우주에 단 하나뿐인 신발이 자그만치 5만 켤레다.

그러다 히말라야로 갔다. 그가 말했다.

“히말라야, 아무나 가나?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려운 곳이잖아. 그런데 기업이 도와준다고 하니 이럴 때 가야지 죽기 전에 언제 가보겠어.”

발가락 하나만 없어도 걷기 어렵다. 더구나 팔 하나가 없으면 균형을 잡기가 지극히 어렵다. 하물며 칠십 노인이 구토와 어지럼증이 난무하는 고산을 걷겠다니....

젊은 사람들이 숨을 헐떡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순간을 좌절과 포기와 오기 사이를 오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구름 뒤 먼 산을 향해갔다. 걷다가 걷다가 더 이상 어를 곳이 없을 때 그는 바위에 앉아서 나에게 손을 흔들며 슬쩍 웃었다. 선글라스 뒤편에 있던 눈동자를 그때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발도 없고 다리도 없는 이십 대, 삼십 대 청년들이 온통 눈물 투성이가 된 채 칸진리에 올라와 그에게 다가갔을 때, 그 선글라스 아래에서 고요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지연아, 상민아, 병휘야, 우리 모두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나는 산을 내려와 그날 저녁 선생 앞에서 대취하여 그 어깨에 기대어 크게 울었다.

오른팔도 있는 나는 세상에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가.

  ** 박종인 저 "한국의 고집장이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