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 이야기1

내가 사는 아파트 뒤에는 야트막한 동산이 하나 있다. 본래는 해발 812미터에 이르는 천마산의 한줄기였으나 4차선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그 맥이 끊겨 지금은 독립된 하나의 작은 동산으로 남아있다. 천마산의 정기를 이어받았으나 외롭게 떨어져 나간 이 산자락을 나는 처음부터 ‘뒷동산’이라고 불렀다. 이 동산에는 소나무 밤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외 각종 잡목들이 서식하고 있다. 십수년 전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 올 때는 산길도 없었고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좀 으스스한 기운도 들었지만 나는 곧 이 동산을 탐색이라도 하듯 자유롭게 드나들며 가벼운 산책을 즐기곤 했다. 가을이면 밤과 도토리를 줍는 재미도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인구가 늘어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이런 가을의 열매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산이나 그렇듯이 이곳 뒷동산에도 오래된 약수터가 하나 있다. 제법 깨끗하고 수량도 풍부해 처음에는 즐겨 이용했다. 지금도 생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용하고 있지만 점차 주변 인구가 늘어나서인지 수질검사에 불합격 판정을 받는 때가 많다.

이곳 뒷동산도 세월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있다. 올봄부터 주민들의 요구로 맨발걷기 황토길이 조성된 것이다. 최근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을 마련하여 맨발족들의 수다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아직 맨발걷기를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 만나는 동네 주민들과 인사도 나누며 수다방에 동참하기도 한다.

뒷동산 하면 어릴적 기억이 생생하다. 바로 우리 고향집 뒤에도 ’뒷동산‘ 맞은편에는 ’건너동산‘이 있었다. 오랜만에 뒷동산 건너동산하고 부르니 그때의 모습이 눈앞에 서서히 떠오른다. 뒷동산에는 철갑을 두른듯한 적송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고, 그 아래 펼쳐진 금잔디 밭에는 조상들의 묘가 몇기 있었다. 추석명절이나 시제 등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는 아버지를 비롯하여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제사를 모셨던 장면도 생각난다. 거기서부터 동산 끝 서해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키 작은 소나무와 잡목이 가득했다. 우리집 바로 뒤에는 상수리 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도토리를 꽤 많이 수확했다. 어머니와 오빠들이 돌 절구공이로 상수리 나무를 쿵쿵 두드리면 나와 동생은 우수수 떨어지는 도토리를 바구니에 마구 주워 담았다. 내가 지금까지 쫄깃하고 윤기나는 도토리 묵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 것이다.

초중고 시절에는 뒷동산에 가마니 몇장을 끌고 가서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적송 그늘 밑에 깔아놓고 공부방 놀이방을 차렸다. 여기서 동네 친구들 동생들 조카들과 놀면서 방학숙제, 글쓰기, 책 읽기를 하며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옥수수 감자떡 찐빵 등을 맛있게 먹었다. 여름방학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온 조카들 외사촌 형제들에게 보여줄 곳은 이 시원한 나무 그늘이 최고였다. 그때 우리를 괴롭혔던 개미 떼가 얼마나 많았던지, 팔 다리에 수없이 기어오르는 개미를 무조건 잡아 죽였다. 나중에 도덕책에서 ‘개미와 종기’ 일화를 읽고 난 후에는 개미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개미 살상을 자제하고 잔디밭 쪽으로 쫓아냈던 기억이 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