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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꽃밭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화려한 백일홍 꽃밭이 보인다. 폭이 2-3미터 길이가 60여 미터에 이르는 이 꽃밭을 따라 걸어가면 활짝 웃고 있는 색색의 백일홍 아가씨들로부터 사열을 받는 기분이다. 사열을 받고 나면 왠지 으쓱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 이 꽃길은 나만이 즐기는 길이 아니고 우리 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보고 즐기는 꽃길이다.
사실 전에는 이곳에 메타세콰이어 나무 16그루가 길 양쪽에 우람하게 서 있었다. 그때도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특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메타세콰이어 나무 그늘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지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아파트 지하 배관을 손상시켜 결국에는 제거하게 되었는데, 그 큰 나무가 쓰러지는 날 얼마나 서운했던지. 하루일과가 끝난 저녁에 그 길을 걸으면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잠시 잠깐의 휴식을 즐기곤 했는데, 새로 심은 작은 이팝나무는 나의 이 기쁨을 대신해 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봄에 어느 지혜로운 분의 아이디어로 이팝나무 사이에 백일홍 꽃밭을 가꾼 것이다. 그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함은 물론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잡초도 뽑고 사진도 찍으며 꽃밭 가꾸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어느날 ‘이곳에 꽃씨를 뿌렸으니 들어가지 마세요' 라는 팻말을 보고 설마 이렇게 예쁜 꽃밭이 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슨 꽃씨일까‘ 그냥 궁금할 뿐이었다. 그 후 싹이 트고 좀 더 크게 자란 떡잎을 보니 아! 백일홍이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6월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자란 꽃나무 여기저기에서 한송이 두송이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수일만에 무지개 빛깔의 백일홍 꽃밭이 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그후 아침 일찍, 아니면 외출하고 돌아올 때, 쓰레기 버리고 들어올 때, 일과를 끝낸 저녁에는 일부러 꽃밭에 들러서 나날이 커가는 꽃송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손끝으로 꽃송이를 쓰다듬으며 반갑다고 정말 예쁘다고 그리고 고맙다며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꽃들도 신이 나서 더 크게 더 선명하게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린 시절 즐겨 가꾸었던 백일홍 채송화 봉숭아 과꽃 해바라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동요 ‘꽃밭에서’와 ’과꽃‘을 작은 소리로 부르며 이 꽃길을 천천히 걷는다. 갖가지 수입종의 일년생 꽃들도 많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정들어 왔던 백일홍 꽃밭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색깔도 전보다 다양하게 진화되어 빨강 노랑 분홍 연분홍 주황 보라 등등 그 색깔을 어떤 어휘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그 각각의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환상적인 꽃밭을 이룬다. 초록색 잎을 포함하면 마치 일곱 빛깔 무지개 꽃밭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꽃밭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얼마 전 조카들이 방문하였는데 이 꽃밭을 보여주었더니 예쁘다 화려하다 멋있다 환상적이다 꽃송이가 귀엽다 등등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하여 한참 웃고 떠들며 놀다간 적이 있다.
백일동안 붉게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 했던가. 꽃이 피기 시작한 지 달포가 지났는데 아직도 싱싱하고 꽃나무 사이에서 계속 작은 꽃송이들이 쏘옥쏘옥 내밀며 ’나도 피었어요‘한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된다“고. 이 백일홍 꽃밭도 이렇게 태어나 이웃들에게 하나의 선물로 다가온 것이다.
벌써 장마가 시작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여름은 9월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미 40도 이상 오르내리는 폭염과 이상기후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며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꽃밭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두려움도 더위도 남의 이야기 같이 들린다. 가슴속에서 엔돌핀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백일홍의 생애는 무더위가 끝날 무렵까지 백일동안 지속되겠지. 그때까지 나는 이 꽃밭을 지켜보며 조화와 화합속에 피어나는 백일홍 꽃밭의 아름다움에 힘과 용기를 얻어 올여름 무더위를 잘 견디어내리라.
2024년 7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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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4 개
심현녀(56)
2024-07-15
심현녀(56)
2024-07-15
한꺼번에 두장은 안되나봐요.
감사합니다.
홍정일(49)
2024-07-16
단지내 백일홍 꽃길 너무 아름답네요.
사진과 글에 취해 잠시 머물러 보았습니다.
저는 5월 13일에 어깨를 다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하여
2주간 있다가 퇴원하여 계속해서 통원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오른쪽 팔이라 많이 불편하네요.
조심하고 사는데도 이런일이 벌어졌어요.
홈이 궁금해 혹시나하고 오늘 들어와 보니 후배님의 글이 올라와
반가웠습니다.
날씨가 무더우니 건강 조심하시기를 ~
또 기다리겠습니다^^
다친 후 처음으로 자퍈을 두둘겨 봅니다.ㅋ
심현녀(56)
2024-07-17
어서 오세요.^*^
환영하고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재활 운동 열심히 하셔서
온전한 어깨 유지하여
마음껏 작품 활동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