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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진출한 최초의 독일계상사 세창양행
  • 작성자 : 홍정일(49)
  • 작성일 : 2022-05-05
  • 조회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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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주재 독일영사관에서 근무하던 묄렌도르프는 
1882년 연말 청국 북양대신 리훙장의 추천으로 조선에 부임했고, 
통리기무아문 협판(외교부 차관), 해관 총세무사(관세청장), 
전환국 총판(중앙은행장)을 차례로 겸직했다.
당시 한국은 서양 문물에 대한 개방이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1884년 5월, 인천에서 세창양행이 설립되었을 때, 
조선의 외교, 통상, 관세, 재정은 독일인 묄렌도르프가 주도하고 있어 비교적 쉬웠다.
   
묄렌도르프는 1883년 4월에 그가 청국에서 각국출신 해관요원을 데리고 들어와 인천해관을 
원산이나 부산보다 앞선 1883년6월16일에 개설하고 그 해 11월부터는 
일본측에도 관세를 부과 하도록 했다 한다.
또 그는 1884년 3월에 전환국 총판에 임명되어1885년에 세창양행을 통해 독일의 조폐기기와
기술자를 데려와 우리에게 근대적 화폐제조의 길을 열어 주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외교정책이나 정부형태,교육제도를 비롯해 국토개발과 공업을 비롯한 
산업발달,교통 수단의 개발 등에 있어 구체적인 개혁 구상을 작성하여 
조선정부에 실현을 촉구한 인물이다.
    
묄렌도르프는 조선 경제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차관 도입, 농업 개혁, 물류 시스템 정비, 
광산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고, 그가 일으킨 사업은 대부분 세창양행이 대행했다. 
사업 초기 세창양행은 독일산 바늘, 염료, 금계랍, 영국산 면제품을 수입했고, 조선산 쇠가죽, 
쌀, 콩 등을 수출했다. 대중들에게는 소비재 판매로 '세창'이라는 상표가 각인되었지만, 
세창양행의 주요한 매출은 정부를 상대로 한 이권 사업에서 이루어졌다.
   
세창양행은 1883년 조선과 독일의 수교 이후 조선에 진출한 최초의 독일계 상사였다.
개항이후 학질 치료제인 "금계랍"이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금계랍"은 치료비와 약값없이 무료로 치료해 주는 국립의료기관인
<제중원>에서도 10알에 500푼을 받고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금계랍의 효험을 알게 된 사람들이 상비약으로 쓰려고 필요 이상으로 얻어가려 했기 때문이었다.
제중원을 찾은 환자 중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았던 것도 금계랍의 탁월한 효험 덕분이었다.

   세창양행의 숙소 터는 현) 맥아더 동상자리에
1883년 건립된 세창양행의 숙사 건물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온 3명의 상사원을 위한 기숙사였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1922년에 인천부청이 매수하여 최초의 인천부립도서관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1946년4월 이경성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이 이 곳에서 
개관하였으나  6.25 전쟁중 소실 되었다. 
이탈리아식 2층 벽돌집으로 회를 칠한 하얀 외벽과 붉은 지붕이 돋보였고
1층에는 아치형 기둥과 멋스러운 사각탑이 있었다.
그 자리에 맥아더장군 동상이 세워진 것
   
세창양행 사옥은 신포로 23번길 49 (중앙동 3가 ) /현) 중앙프라자 마사회 건물자리
당시 (한성주보) 1886년 2월22일자에 한국 최초의 광고
"고백(告白)"을 게재하면서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진행했다. 
 
ㅡ인터넷 검색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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