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와 사랑니 1

 

나는 평생 검은머리를 유지하며 지내왔다.

한때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적도 있지만

주로 자연 그대로의 검은머리 색깔을 즐긴다.

최근 10여 년 동안은 파마도 안 하고 지냈다.

약간 곱슬머리인 내 모습이 그런대로 봐줄 만하기 때문이다.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억지로라도 즐거워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거울 앞에서 잘 다듬어진 내 검은머리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어본다.

비록 이마에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아직은 괜찮은 모습이다.

머리염색으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염색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나는 참 행운아다.

 

나도 한때는 머리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많았다.

학창 시절에는 곱슬머리에 머리숱도 많아서

단정하고 가지런한 머리모양을 한 친구들을 꽤 부러워했다.

그 시절에 용돈을 아껴가며 미장원에 가서 머리 손질한 것을 보면

머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까.

그 당시 몰래 미장원 출입했던 용기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곱슬머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파마를 안 해도 되고 숱도 많은 편이어서

머리 손질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때 어머니 몰래 사용했던 용돈의 수백배를 지금 공짜로 벌고있는 느낌이다.

가끔은 친구들에게 “염색도 안 하고 파마도 안 하는

무공해 머리스타일”임을 자랑하기도 한다.

 

나의 어머니는 40대 초부터 새치가 생겨서

어린 나에게도 새치를 뽑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쩌다가 실수로 검은 머리카락을 뽑게 되면 잘 뽑으라고 채근하기도 하셨는데

아마 귀밑머리를 뽑을 때였을 것이다.

그 당시 염색은 생각지도 못하고 어머니는 자연 그대로 흰머리 여인으로 사셨는데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검은머리를 부러워하셨을까.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78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윤기 나는 검은머리를 유지하셨는데 내가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그런데 내 기억에 어머니는 약간 곱슬머리에 숱도 많으셨다.

그 긴머리를 감아 말리고 쪽을 지실 때 숱이 너무 많아 오히려 귀찮아하셨다.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하여튼 어머니는 숱 많은 곱슬머리 여인이셨다.

 

나는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의 우성유전자만 쏙 빼닮았으니

어찌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50대부터 흰머리염색을 하는 내 동생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