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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유네스코문화유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6-05-06
  • 조회 : 265
  • 첨부파일 :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 화성의 서장대(西將臺)가 지난 5월 1일 새벽에 방화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5억 5000만원을 들여 오는 10월까지 복원키로 한다지만 이미 그 문화재적 가치는 소실된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즉, 진품은 불에 타버리고 복제품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에 얼마전 화성행궁과 수원성을 돌아본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 수원 화성

 

조선 태종때 도호부로 승격된 수원은 한성 4진의 하나였다.

한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인 광주, 강화, 수원, 개성에 진을 설치하여 수도 한양을 보위케 한것이다.

그 수원땅을 지키고 있는 화성(사적 제3호)은 팔달산(143m)을 중심으로 하여 총길이가 5,700m에 달한다.


화성의 축성은 정조의 한과 효심에서 비롯됐다.

1762년 영조 38년 윤 5월21일 사도세자 (장조:고종때 추존)는 당쟁으로 인하여 한여름 뒤주 속에 갇혀 8일만에 죽었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당시 11세였는데 그후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즉위 13년만에 부친의 고혼을 위로키 위해 묘를 양주 땅 배봉산(지금의 서울시 전농동)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수원을 자신이 이상으로 꿈꾸는 신도시로 건설하고자 정조 18년 정월부터 20년 9월까지에 걸쳐 성곽을 축성하였다.


화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이 아니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건축학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화성은 조선 성곽제도의 최고 완성형이다. 한국성곽 발달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한다.

이 성은 석성과 토성의 장점만을 살려 축성됐다.

화성축성에 매달린 선조들은 한국성곽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국과 서양의 축성술을 본뜨기도 했다.

 

이 성에 관련된 사항은 "화성 성역의궤"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화성의 건축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당시 30세였던 다산은 왕실서고 규장각에 비치된 첨단서적들을 섭렵하고 중국에서 들여온『고금도서 집성』5,000권을 참조해 새로운 성곽을 설계했다. 정약용은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에는 성문을 비롯, 48개의 시설물이 있었지만 현재 복원된 것을 포함해 41개의 시설물이 남아 있다.

보물 제402호인 팔달문을 비롯해 팔달산을 둘러싼 시설 가운데 가장 높은 서장대, 화포를 감춰두고 적군에게 총을 쏘도록 축조된 남포루, 선조들의 정취가 가득한 방화수류정 등 200년전 건물엔 조선의 문화 향기가 가득하다.

 

화성은 1997년 12월4일 창덕궁과 함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최근에는 수원시 화성사업소를 설립하여 화성행궁과 수원성 일대를 문화유산으로 제대로 관리하고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제도개선과 보완, 발전을 모색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중 이런 화재사고를 겪고보니 참으로 민망스럽다.

 

 

<화성행궁을 관람시 미리 예약, 요청하면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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