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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 19
  • 작성자 : 민영희(50)
  • 작성일 : 2020-09-13
  • 조회 : 211

 

코비드19의 증언

 

 

1. 황금 궁전의 요양원의 증언

미국의 양로원은 시설로 보면 황금궁전이다. 유명도시의 양로원은 수용된 노인이 820명이 넘는다. 이곳의 노인 400명이 이번 코비드19 전란에 사망했다. 이곳에 간병인이 우환을 다녀온 후 전염되어 양로원 노인 400명이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보도진은 이곳을 자세히 취재하게 되었다

코비드19 세계3차 대전은 전세계 인류에게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려주는 교훈을 곳곳에서 증명해 주고 있다. 양로원은 교도소로 집안에 잠시 갇혀 있는 것이 고통이며, 그것은 가족의 행복이다.

모여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새삼 알리고 떠나가고 있다. 새로운, 간단한 것만이, 편안한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도 알리며 안녕의 손을 흔들고 있다. 흔드는 손은 깃발이고 노스탤지어가 되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2. 양로원에 어머니를 보내놓고 살아가던 아들이 이 보도를 접한 후

양로원을 찾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아들의 나이는 60대인 홀아비다. 아들은 어머니를 모셔오기 전 우선 집안 가득 생필품과 식료품을 채웠다. 이유는 양로원을 나온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접촉한 자신도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접한 보도진이 이 집을 방문한다. 물론 밖에서 인터뷰를 했다.

할머니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간호사도 없고 걷지도 못하는데 치료는 어찌하며 거동은 불편하지 않습니까? 양로원은 모든 것을 손발처럼 해주는데 괜찮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들이 주사처방을 까먹었지만 우리 모자는 깔깔 웃었답니다. 지금 막 주사 맞고요.”

그래도 됩니까? 친구도 없고 산책도 못하고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데 괜찮습니까?”

난 너무 행복합니다. 아들 손잡고 눕고 일어납니다. 난 평생 이처럼 행복해본 적 없습니다.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인터뷰에서 기자는 밖에서 전화로 진행됐고, 아들은 노모의 옆에서 종이에 감사함을 써서 창에다 붙였습니다.

 

3. 궁전 노인의 외로움

궁전의 노인들에게 보도진이 질문을 했다. 물론 대자보 쓰듯이 종이로 노인에게 질문을 했다.

할머니, 누가 제일 보고 싶습니까?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궁전 안, 요양노인들은 하나같이 손을 저으며 손주! 그랜 손!”

등을 외치며 적어서 저마다 유리창에 내붙이는 것이다.

하여 가족들을 찾아가 이 소식을 전했다. 아무도 요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하여 그 이유를 물었다. 마이크를 대고 이유를 물으니 제 자식을 코비드19로부터 보호해야 하기에 절대 어머니를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자식들보다 손주가 보고픈 것은 왜일까?

우리는 자식을 기르고 손주를 보았으니 곰곰이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4. 재혼한 궁전 노인

딸은 비록 재가한 어머니지만, 어머니가 있는 궁전 같은 요양원을 3시간 운전하여 달마다 방문하고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양로원의 보호자 자격은, 우선 호적상 남편이 1순위다. 지금 코비드19가 기성을 부리니 방문도 제한되고 전화로도 보호자가 아니면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간병인 또는 양로원엔 하등의 법적 책임이 없다. 그런 사정이 있는 이 딸은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양로원은 간단히

네 괜찮습니다.”

끊는다.

그렇게 한 달을 지냈는데 전화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딸은 안달한 나머지 양로원을 가서 살펴도 창안에 앉아있어야 할 어머니가 보이질 않아 다시 밖에서 전화를 하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만 했다. 딸은 다시 찾아와 사정하니 창안으로 어머니의 산소마스크 쓴 모습이 보였다.

이 할머니 손자는 셋이다. 세 살, 유치원, 초등생이다. 요즘 이곳은 아직 눈이 내린다. 딸은 세 자식을 크리스마스 때처럼 곱게 단장해 모자를 씌우고 양로원을 다시 찾았다. 보도진들도 이들의 평상시 할머니를 찾는다는 소식이 퍼졌다. 양로원 밖에 대기하고 있는 보도진들이 이 딸과 손자의 모습을 보고 취재를 했다. 세 손자는 그림과 글을 대자보같이 써가지고 와서 받쳐 들고 할머니를 외쳐댄다

그랜맘 할머니이! 할머니 그랜맘! 그랜마암 할머니이!”

사랑해요 할머니! 아이 러브 그랜맘, 아이 러브 그랜맘! 사랑해 할머니! 아이 러브 그랜맘!”

창안에 누워있는 노인은 희미하게 밖을 본다. 아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할머니는 이들이 어떤 외침을 하는지 알고 있으리라! 딸과 손녀들이 항상 어머니를 찾아 왔었으니까! 창안 산소마스크 한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루 흘렀다. 보였다. ! 얼마나 보고픈 손녀들인가! 손자였나!

내 아가들아! ! 내 손자로구나 오! 나도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랜손! ’

이렇게딸의 대성통곡이 창밖에서 널리 퍼질 뿐. 엄마,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창밖에는 흰 눈으로 날리고 있었다. 보도진들도 모두 흐느껴 울었다.

 

 

댓글달기

총 댓글 3

  • 오미례(61)

    2020-09-14

  • 오오
    민 영희 선배님
    홈에서 처음 뵙습니다만
    낯설지 않으시고 편안한 마음입니다

    민 영희 선배님
    코비드 19
    혹 선배님의 작품글 이신가요
    한줄,한줄,, 읽어가면서
    소설을 보는듯 스릴과 서스펜스

    선배님
    반갑습니다
    홈피에서 자주 뵈옵기를 청드리옵니다
    선배님^^
  • 노순희(53)

    2020-09-14

  • 민영희 선배님
    홈에 가입하시더니 지금 현실에 딱 맞는 글을 올려주셨네요
    미국의 양로원은 1978년도에 미국에 잠시 살고 있을 때
    아는 이의 가게 옆에 양로원이 있어 활동하는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런 슬픈 사연들이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 했었죠
    미국이란 나라는 부자라 노인들 복지가 이렇듯 잘 되었구나
    그리 생각했었는데....그게 아니군요

    오전에 외출했다 돌아오며 버스 안에서 여유롭게 읽었는데
    가슴이 뭉클하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남의 일이라고만 볼수 없는 현실....
    부모가 심한 치매로 인해 가족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으면...
    4년간 요양원에 계시다 작년 가을에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그려봅니다
    몇달 더 계셔서 코로나 상황에 계셨으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 고생 하지 않으시고 천국에 가신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민영희 선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민영희(50)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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